자유와 영원한 사랑 – 장재형목사

1.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환희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바울 사도의 로마서 8장은 성경 전체에서 복음의 정수를 가장 아름답고 장엄하게 표현하고 있는 장으로, 복음 이해의 핵심적인 열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로마서 8장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환희의 삶”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본문으로, 장재형목사는 이 말씀이야말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난 성도들이 얼마나 큰 기쁨과 소망을 누릴 수 있는지 잘 보여 준다고 말한다.

먼저 현대의 성경은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지만, 본래의 성경은 구분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7장과 8장을 끊어서 보지 않고 연속된 메시지로 바라볼 때, 우리가 겪는 내적 갈등과 거듭난 이들의 영적인 자유를 더욱 선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로마서 7장 23절에서 24절은 구원받은 자도 심각한 내면의 분열과 곤고함을 겪는 현실을 보여 준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3).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이 본문에 대해 장재형목사는, 이미 구원받아 죄 사함을 받은 자들도 여전히 육신에 속한 문제로 인해 갈등을 경험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구원(칭의)은 받은 상태이지만, 동시에 성화라는 진행 과정 안에 있기에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내면의 모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7장에서 이러한 고통을 토로하면서도, 로마서 8장에서 드디어 성령 안에서 누리는 해방과 기쁨을 선포한다.

로마서 8장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는 ‘성령 안에서의 삶’이다. 바울이 8장 전체를 통해 보여 주는 메시지를 정리해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자유가 어떤 환희와 능력을 낳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포도주에 비유되는 성령에 취한 삶”이라 일컫는다. 이는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삶이 전면적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상징한다. 이미 바뀐 존재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구원받은 성도 역시 원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영광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원죄가 사함받았어도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습관적인 죄’ 혹은 ‘자범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장재형목사는 이것을 ‘포도주가 이미 되었으나, 그 안에 물이 섞여서 싱거워진 상태’에 빗대어 설명한다. 성령에 의해 거듭나 거룩하게 된 자라 할지라도, 과거의 죄적 습관이 우리의 내면에 계속해서 작동하기 때문에 성화의 과정에서 이를 씻고 정결케 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흔히 혼동하는 것이 예레미야 2장 22절과 이사야 1장 18절 사이의 긴장이다. 예레미야는 “너희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너희 죄악이 여호와 앞에 그대로 있다”고 말했고, 이사야는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라고 선포했다. 장재형목사는 “이 두 예언이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으로 결코 죄를 온전히 빨 수 없지만,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기에 하나님의 은혜로는 완전히 씻길 수 있다”라는 구원론적 진리를 지적한다.

이를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원죄’와 ‘자범죄’를 구분해야 한다. 로마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보편적이며 연대적인 죄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끊어졌음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원죄 사함’이며, 칭의(Justification)로 설명되는 ‘지위의 변화’다. 장재형목사는 이 지위 변화가 우리의 과거와 전혀 다른 운명을 선사한다고 역설한다. 더 이상 아담 안에서 지배받던 ‘사망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철폐되었고, 실제로 예수를 믿고 거듭난 자들의 삶에서 ‘칠 대 저주’와 같은 운명적 징벌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죄와의 싸움에서 완전한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는 ‘습관적인 죄’ 즉 자범죄가 여전히 남아서 우리의 걸음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정규전은 끝났으나, 소탕전이 남아 있다”라고 비유한다. 십자가와 부활로 인하여 이미 큰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일상에서의 작은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은 전투들은 소탕전이기에 결과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하지만 소탕전을 소홀히 하면 그 잔당들이 다시금 우리를 괴롭게 하고, 성결의 길을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가운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장면(요 13장)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미 전신이 깨끗한 자라도, 걸어 다니는 과정에서 발에 묻은 먼지를 씻어야 하듯이, 구원받은 자들도 일상 속에서 짓는 자범죄를 계속 씻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과정을 “성령 안에서 행하는 자기 성찰과 회개”의 과정으로 본다. 이러한 성화의 훈련은 우리가 이미 얻은 칭의의 확신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견고하게 하는 은혜의 수단이다.

결국 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두 측면을 동시에 품어야 한다.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큰 전쟁을 이기셨다”라는 승리의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남은 전투인 소탕전을 우리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라는 긴장감이다. 장재형목사는 신학자들의 연구와 더불어 실제 신앙생활에서도, 인간이 죄를 대할 때 이 이중적 시각을 놓치면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다고 경고한다. 즉, “이미 죄가 완전히 없어졌으니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라고 착각하거나, 반대로 “우리 안에 여전히 죄가 남아 있으니 구원의 확신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낙심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 잡힌 이해 속에서, 로마서 8장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첫 번째 핵심 메시지는 “성령 안에서의 완전한 자유와 환희는 실제로 경험 가능한 실재”라는 점이다. 바울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으며,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고 선언한다(롬 8:1-2). 여기서 우리는 법적 신분이 바뀐 것에 따른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장재형목사는 로마서 8장 14절에서 17절을 통해, 이 자유는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자가 ‘성령 안에서’ 아바 아버지를 부르며 친밀하게 교제하는 데서 오는 구체적인 기쁨과 영광으로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자녀 된 자들은 하나님의 상속자이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가 되기에, 이 땅에서 어떤 고난이 있어도 그 고난이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는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하는 진리가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친히 증언해 주시는 내면의 확신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18절에서 30절에 이르는 말씀, 즉 ‘우주적인 회복’과 ‘산 자의 부활’에 관한 가르침은 바로 이러한 자유가 개인적·영적 차원을 넘어서 창조세계 전체로 확장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해산의 수고를 하는 이유는,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 때문에 함께 회복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롬 8:19-22). 여기서 바울은 인류를 포함한 우주적 재창조의 비전을 제시한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미리 맛보는 성도들이 누리는 성령 안에서의 자유가, 개인의 내적 평안에 그치지 않고 역사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라고 설명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점을 창세기 9장의 노아 이야기에 연결 지어, 노아가 홍수 심판 후 새로운 땅, 곧 신천신지(new heaven and new earth)에 내려서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누린 자유와 기쁨을 비유로 사용한다. 노아가 취해 벌거벗은 모습은, 에덴동산에서 타락 이전의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모습과 통한다고 말한다. 이는 ‘죄 이전의 순수함’, 혹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거룩한 기쁨’을 상징한다.

여기서 포도주는 성령의 상징이자, 죄 사함과 새 생명의 기쁨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이 이를 예표하며,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 사도와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뒤 “새 술에 취했다”라는 비난을 받았던 장면 또한 같은 맥락이다. 즉 성령 강림으로 인해 예언되었던 새 술이 실제로 부어졌고, 이것이야말로 구약의 예언(요엘 2장 등)이 성취된 결과라고 장재형목사는 강조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이 보여 주는 자유는, ‘물 같은 존재’가 ‘포도주’로 변화되어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거듭남의 실체다. 이것이 우리가 이미 이룬 것이면서도 동시에 계속 누려야 할, 그리고 나아가 자범죄의 흔적을 씻어 내는 성화의 과정에서 더욱 완성해 가야 할 삶이다. 장재형목사는 “이미 우리는 새 집에 이사했지만, 과거의 구습으로 인해 이전 집으로 돌아가려는 습관적 죄에 휘둘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깨어 있는 삶을 살면, 점차 그 습관에서 벗어나 점점 더 성결한 모습으로 나아가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때 ‘죄의 두루마기’를 빨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묵시록(계 22:14)의 이미지가 중요한데, 이것은 칭의 이후에 우리가 게을리하지 말고 수행해야 하는 매일의 회개와 순종의 삶을 뜻한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하나님 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다는 비전(계 19:7-8)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최종적인 영광이자 영화(Glorification)의 단계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두고,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성도는 이 미래의 영광을 미리 맛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정리한다.

이처럼 로마서 7장과 8장을 연속성 속에서 살펴보면, 구원받은 자가 현실에서 겪는 내적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제공된 거대한 해방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된다. 또한 장재형목사는 이 모든 과정을 총괄해“우주적인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개인의 신앙 여정이 어떻게 통합되는지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죄와 사망의 법을 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그리고 성령의 내주와 인도하심, 그로 말미암는 자유와 환희는 바로 로마서 8장이 가장 심오하게 증언하는 구원의 보화이자 보증이다.

이것이 첫 번째 소주제인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환희”의 전반적 내용이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했듯, 성도들도 칭의를 받아 새 생명으로 탈바꿈했으며, 그 상태를 유지하고 더욱 선명하게 살아내는 힘이 바로 성령이라고 장재형목사는 지속적으로 역설한다. 구원의 핵심은 단지 죄 사함이나 천국 입장의 권리만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성령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 충만한 기쁨, 활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은 결국 구원을 보증하는 열매가 되고, 우리를 더 높은 차원의 영광으로 이끈다.

2.성도의 견인과 영원한 사랑

앞서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환희”가 로마서 8장의 전반부(1절에서 30절까지)에 걸쳐 펼쳐진다면, 이어지는 31절부터39절은 이 모든 구원과 성령의 역사를 종합하고 결론 내리며, 절정으로 치닫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 마지막 단락은 흔히“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혹은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가르침으로 알려져 있다. 장재형목사는 이 부분을 두고 로마서 16장 중에서도 가장 웅장하고 확실한 ‘승리의 찬가’라고 칭한다.

먼저 성도의 견인이란, 구원받은 사람이 끝까지 믿음을 지켜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는다는 교리를 말한다. 칼뱅주의 전통에서“성도의 견인”은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라는 교리와도 연결되나, 단순히 기계적인 교리적 해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바울은 로마서 8장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끝까지 붙드시는 사랑의 능력과 확실성을 증언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5).”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장재형목사는 이 말씀을 해설하면서, “성령 안에서 거듭난 성도들은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 어떤 세력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놓을 수 없는 굳건한 언약 관계에 들어섰다”라고 강조한다. 이는 구원의 확신과 더불어 우리에게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자범죄로 인한 넘어짐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결코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신다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이 견인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셨으니,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라고 반문한다. 즉 하나님 편에서 베푸시는 절대적인 사랑, 곧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극진한 사랑이, 우리의 구원을 보존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라는 것이다. 우리가 연약할 때, 혹은 신앙적으로 흔들릴 때, 심지어 죄의 습관에 매여 잠시 길을 잃을 때도,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 장재형목사는 이를 “하나님 편의 100% 헌신에 근거한 구원의 보증”이라 부른다.

또한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라는 구절이 말해 주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칭의받은 성도에게는 죄의 정죄 권한이 더 이상 없음을 확실히 보여 준다. 세상이나 사탄이 고소한다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우리를 의롭게 선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의 판결은 취소될 수 없다.

장재형목사가 주목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끊을 수 없음’이 곧 방종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고 해서, 우리가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그 사랑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사랑을 깨달은 자들은 ‘포도주로 옷을 빨아야 한다’라는 묵시록적 이미지를 기억하고, 더욱 경건과 순종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아는 자는, 그 사랑을 배반하는 길을 택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넘어질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다시 회개하고 돌아와 견인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편에서 결코 끊어지지 않는 언약적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사랑’이라는 표현으로도 설명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사랑이 칭의, 성화, 영화까지 이어지는 전 구원의 과정 내내, 성도를 인도하고 지키는 절대적 힘이라고 강조한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셨다”라는 복음의 기초적 선언이며, 이 사실 위에서 로마서 8장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결코 정죄당하지 않는다”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두 축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정리해 보면, 로마서 8장 후반부는 마치 구원의 대서사시가 결론 부분에 다다라 울리는 웅장한 합창과 같다. 바울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이 얼마나 견고하며 영원한 것인지를 놀랍도록 힘차게 선포한다. 이 메시지가 주는 위로와 확신은, 우리의 일상적 신앙생활 속에서 커다란 힘이 된다.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성도들은, 계속되는 자범죄와의 싸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성화의 과정을 걸어갈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라는 절대적 약속이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가르침을 삶에 실제로 적용해야 함을 여러 차례 설교와 강의에서 역설해 왔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보장된 구원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초월하는 자유와 담대함’을 준다. 세상적 가치나 환경이 우리를 흔들 수 있으나, 결국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더 강력하기에, 우리는 어떠한 환난이나 박해도 이겨 낼 수 있다. 실제로 믿음의 선진들, 교회사 속의 무수한 순교자들, 그리고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성도들은, 이 로마서 8장의 약속을 붙들고서 담대히 믿음을 지킨다.

특히 장재형목사는 로마서 8장을 “노아의 포도주 비유”와 함께 연결 지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영원한 기쁨이 이미 이 땅의 성도들에게 예표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노아가 홍수 후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딘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해 마치 심판 이후의 새 세계를 미리 맛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옷을 벗고도 부끄러움이 없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고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기쁨은 참으로 완전하며, 장차 도래할 천국 잔치의 작은 모형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삶을 지속하도록 붙들어 주는 것이 “영원한 사랑”이다.

또한 이 견인 교리는 우리의 인간적 약함이나 실패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구원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교리이기도 하다. 장재형목사는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선택했고, 죄를 멀리할 의무가 있지만, 여전히 연약해서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이 ‘영원한 사랑’의 본질이다. 하나님 편에서 절대 끊지 않겠다고 하신 언약적 사랑이 있기에, 성도는 언제든지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으며, 끝까지 구원을 지켜 갈 수 있다”고 해설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은 ‘칭의(Justification) → 성화(Sanctification) → 영화(Glorification)’로 이어지는 구원의 전 과정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완성된 상태로 죄와 씨름하는 모습을 7장 후반부에서 현실감 있게 보여 준 후, 8장에 이르러서는 성령 안에서의 자유와 환희의 삶, 그리고 결국에는 성도의 견인, 곧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완전히 우리를 붙들고 있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구조적 흐름이 “신학적 지식”을 넘어 신앙인이 삶으로 체험해야 할 “구원의 서정”이라고 설명한다. 지식으로만 알 때는 피상적일 수 있지만, 실제 삶에서 성령의 거룩한 인도를 경험하고, 매일의 회개와 말씀 묵상을 통해 옛 죄의 습관을 씻어 내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끝까지 나를 사랑으로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체험함으로써, 로마서 8장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성도의 견인과 영원한 사랑은 우리에게 종말론적 소망도 준다. 이 땅의 고난이나 불안, 그리고 죽음조차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므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대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담대한 믿음을 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8장이 말하는 최고의 클라이맥스이며, 나아가 복음 전체가 선포하는 ‘승리의 복음’이다.

장재형목사는 이 견인의 교리가 지닌 실제적 효력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교회 역사상 많은 성도들이 낙심의 순간, 혹은 시험과 고난의 때에 로마서 8장 31절부터 39절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의 무릎을 꿇으며, “어떤 것도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라는 선포로 절망을 돌파했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이 결국은 실제 삶에서의 극복과 승리로 이어졌다. 바울의 선언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승리자이기 때문이다(롬 8:37).

이처럼 두 번째 소주제인 “성도의 견인과 영원한 사랑”을 통해, 로마서 8장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는 단지 신학적 교리의 완결이 아니라, 실제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를 붙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자 약속이다. 우리는 로마서 8장을 통해 죄의 문제에서 자유와 환희를 경험할 뿐 아니라,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이 시작하신 구원을 끝까지 온전하게 완성하시리라는 ‘반석 같은 확신’을 얻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 로마서 8장은 구원의 드라마가 정점에 달하는 장면이며, 성령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동시에, 마지막에는 어떤 피조물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위에 굳게 서 있음을 확인해 주는 클라이맥스다. 장재형목사는 이 로마서 8장의 메시지를 붙들면, 성도들이 인생의 여러 전환점을 맞고 비약적인 영적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죄의 습관이 견고해 보여도,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의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보증하기에 소망이 있다.

바울이 로마서 8장 곳곳에서 성령의 역할, 죄로부터의 해방, 자녀 됨의 영광, 우주적 회복, 그리고 견인의 확신을 일관되게 증거하는 것은, 한마디로 “복음의 핵심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기” 위함이다. 그 복음의 결론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의 사역, 봉사, 순종, 심지어 회개와 성화의 노력조차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지 않다면 헛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를 내어 주시고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우리가 끝까지 그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

따라서 장재형목사가 일관되게 강조하듯, 로마서 8장은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 사랑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역사하며, 우리를 변화시키고, 자유케 하고, 환희를 맛보게 하고, 결국은 영원한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롭게 되는지에 대한 전체 과정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코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언약으로써, 성도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반석과 같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정리하자면, 로마서 8장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환희, 그리고 성도의 견인과 영원한 사랑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된 위대한 구원의 장이다. 첫 번째 축에서는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고 성령의 내주로 인해 경험하는 새로운 삶의 기쁨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두 번째 축에서는 그렇게 시작된 구원이 궁극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이유, 즉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우리를 붙들기 때문임을 힘차게 선포한다. 이 사랑은 어떤 조건이나 능력, 혹은 우리의 공로에 달려 있지 않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신 대속적 희생과 성령의 인치심이 보증이 된다.

결국 장재형목사는 로마서 8장을 공부하는 것이야말로 성도들이 영적 전환과 깊은 회복을 경험하는 핵심 열쇠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구원의 서정을 이해하고, 이미 주어진 자유와 기쁨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동시에 어떤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견인과 영원한 사랑의 확신을 붙들 때, 우리의 신앙은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더 큰 평안과 능력 가운데 거하게 된다. 이는 바울이 꿈꾸었고 경험한, 그리고 오늘날 우리도 동일하게 누릴 수 있는 복음의 실제적 능력이다.

이처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환희’와 ‘성도의 견인과 영원한 사랑’이라는 두 소주제로 재구성해 보았을 때, 로마서 8장은 죄의 문제로부터의 해방, 하나님의 자녀 됨의 영광, 우주적 회복의 비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끊을 수 없는 사랑 안에 거하는 성도의 견인까지, 복음의 정수와 희망을 가장 웅장하게 드러내는 장이 된다. 칭의, 성화, 영화라는 구원의 전 과정 속에서 인간이 겪는 모든 실존적 갈등과 그것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한데 어우러져, 성경 안에서도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이룬다.

결국 로마서 8장의 결론은 “우리에게는 어떤 정죄도 없다”와 “어떤 것도 우리를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로 요약된다. 장재형목사는 이 두 선언이야말로 기독교 복음이 제시하는 가장 확고한 기쁨과 소망의 표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을 듣는 성도들은 지금도 큰 위로와 확신을 얻어,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살아가며,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소망 중에 기다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장재형목사는 로마서 8장을 연구하며 설교할 때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죄에 대한 이론적 지식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포도주가 되어 가는 체험을 하는 것”임을 누차 말한다. 다시 말해, 물과 같은 상태에서 포도주로 변화된 존재가 결코 물로 돌아갈 수 없듯이, 우리도 이미 거듭난 후에는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삶에서의 실패나 유혹이 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근거가 ‘성도의 견인’이며, 우리의 결말이 ‘영원한 사랑 안에서의 완성’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점점 더 죄의 습관에서 멀어지고 하나님께 가까워질 수 있다.

여기서 죄의 습관을 씻고 정결하게 하는 과정은 결코 단발적 이벤트가 아니다. 이는 매일의 말씀 묵상, 기도, 회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훈련 등을 통해 이뤄진다. 그 과정에서 한순간에 완벽해지지는 않지만, 분명히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생명의 힘이 우리 안에서 작동한다. 로마서 8장이 말하는 ‘성령의 내주’란 결코 추상적인 사상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안의 욕망과 두려움을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만드는 힘이다.

더불어, 장재형목사가 즐겨 사용하는 예화인 노아의 포도원은 이 과정을 조금 더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만들어 즐기는 모습은, 종말론적 구원 이후에 누리는 충만한 기쁨을 상징한다. 그러나 노아가 그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었을 때, 함의 태도와 셈과 야벳의 태도가 갈렸다. 누군가는 아버지의 수치를 들추어내려 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덮어 주었다. 이처럼 구원 이후에도 인간의 다양한 태도가 드러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포도주”는 축복이었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무대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열매 맺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로마서 8장이 말하는 성령의 역사도 우리를 포도주처럼 변화시키며,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여러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약속으로 귀결된다(롬 8:28).

마지막으로, 성도의 견인과 영원한 사랑은 곧 “끝까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동행”을 의미한다. 바울이 8장 끝에서 고백한 “내가 확신하노니…”라는 선언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믿음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시작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충성스럽게 마무리하신다(빌 1:6 참조). 그 과정에서 성도는 중간에 흔들릴 수 있어도, 결코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그 사랑이 너무나 크고, 죄인이었던 우리를 아들 삼으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실로 완전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로마서 8장의 메시지를 통해, 장재형목사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시대적 혼란과 개인적 고통 가운데서도 결코 좌절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환희”를 붙들며, 동시에 “성도의 견인과 영원한 사랑”을 신뢰할 것을 강조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질 때, 우리 신앙은 튼튼한 기둥을 세우게 되고,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영적 유산을 간직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로마서 8장 전 구절에 걸쳐 호흡을 담아 전하려 했던 복음의 핵심이며, 장재형목사가 설교와 강의, 저술 등에서 끊임없이 외치는 신앙의 정수다.

결국 로마서 8장은 ‘복음의 하이라이트’로서 성령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동시에 그 삶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위에 세워져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죄의 짐을 벗고 자유롭게 걷는 성도들이, 혹여나 넘어질까 두려워할 때 바울의 음성이 들린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그리고 이 말씀을 연구한 장재형목사는 확신에 차서 대답한다. “아무것도 끊을 수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안에 있다.”

이것이 로마서 8장의 결론이자,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복음의 정수다. 두렵고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우리는 이 말씀을 다시 깊이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어떠한 상황도 우리를 흔들어 놓을 수 없다는 견인과 영원한 사랑 위에 굳게 서야 한다. 이 복음의 능력이 오늘도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진리의 빛으로 세상 속에서 빛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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