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목사 (장다윗, 올리벳대학교 설립자)의 ‘로마서 강해’를 읽고나서…로마서 1-2

장재형 목사 로마서 강해

장재형목사 (장다윗, 올리벳대학교 설립자)의 ‘로마서 강해’를 읽고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시작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인생임을 말하고 있다.

장재형 목사 로마서 강해

로마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내 인생이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라는 깊은 고민에 빠져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 내가 아니니, 내가 나의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 아니니,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왔고, 어떤 목적과 이유로 시작된 것인지에 대한 답이 내 안에 있을 턱이 없다. 인간은 너무나도 철저히 결과적인 존재인 것이다. 내 안을 온통 뒤져보아도 그 답이 없었다. 없을 뿐 아니라, 점점 더 깊은 무지에 빠져들어만 가는 것 같았다. 그 답답함과 절망감이란…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데, 어떻게 하루하루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마치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졌는지를 알지 못한 채, 그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다음 단추들을 열심히 채워간다는게 너무나 힘겨운 그런 무기력함과 허무함이라고 할까.

이전에 ‘정글’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깊고 깊은 열대우림에서 길을 잃은 한 사람의 실화를 담은 영화였다. 사실 그 영화는 나에겐 공포영화였다. 길을 잃은 사람안에 그 공포와 불안을 따라가다보니 식은땀이 흘렀다. 주인공은 방향을 알지 못하는데 날마다 전진한다. 그러니 이 전진이 오히려 나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전진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가다가 가다가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를 깨달았을 때의 공포감이란…..숨막히는 고통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나의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까지 가는 것인지를 모른채 하루 하루를 살면서 그저 막연히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헛된 소망일 뿐이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인생은 주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고린도전서도 그렇게 시작한다.

고린도전서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갈라디아서 1:1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갈라디아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장재형 목사의 로마서 강해의 처음부분은 이러한 점을 강조한다. 혹자는 나를 나되게 한 것이 어떤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가장 쉽게는 부모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부모나 조상, 아니면 나의 인생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누군가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조상이나 부모도 사실 궁극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이 사람의 원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결과적인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도는 자신의 삶을 너무도 정확히 정의했다.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오직 나의 인생은 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시작하셨고, 나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그토록 아름답고 선하신 뜻을 따라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셨고, 나를 시작하셨다고… 이렇게 너무도 분명한 창조가 있었고, 시작이 있었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분은 나를 시작하셨을 뿐 아니라, 이보다 더 선하고 아름다울 수 없는 가장 좋은 삶의 길로 그렇게 인도하시고, 가장 최고의 사랑으로 나를 이끄시며, 나를 날마다 지키시고 보호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 내가 쓰러지면 나를 일으키시고 내가 더럽혀지면 나를 씻기시고 내가 사망으로 떨어지면 나를 구원하셔서 반드시 나를 온전케 하시는 그런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사도는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당신의 영광과 아름다운 나라의 모든 것을 상속해주시며 그토록 좋은 당신의 품에 영원히 거하는 삶을 온전히 누리도록 나와 끝까지 동행하시고 날마다 인도하시는 온전한 사랑의 주님이심을 사도는 말하고 있다.

장재형 목사의 로마서 강해 책을 읽으며 나의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분명해진다. 이런 주님의 예정하심, 이런 주님의 부르심, 이런 주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나의 인생임을 마음 깊이 깨달아가며, 나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하며, 기쁜 것인지를 알아간다.

예수만이 진리이며 나의 삶의 길이며 생명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믿는자들안에 있는 영적 교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여정은 결코 무겁고 짐스러운 것이 아니라,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며 가치롭고 소중한 과정이리라…우리를 사랑하시되 이리도 온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속에 빠져 한걸음 한걸장재형 목사는 로마서 2장 강해를 통해 믿는 자들 안에 있는 ‘영적 교만’ 에 대해서 말했다. 이것은 믿는 자들이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모습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영적 교만이 내 안에 스며들어와 결국 나를 침몰시키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시간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인도해 왔던 사역자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선행이 많을수록 공로가 많을수록 위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영적 교만이란 무엇일까?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향한 멸시의 마음과 동시에 스스로를 향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지옥의 불쏘시개와 뗄감으로 사용될 자들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우리 안에 있는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서고 싶은 교만스러운 욕망이 생각이상으로 너무나 강렬히 뿌리박혀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사람을 인도하거나 어떤 일을 결정하는 자리에 서는 사람일수록 이 교만을 깊이 바라보지 않으면 안된다. 마치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의 통찰은 참 대단하다.

이런 교만을 뿌리로 하는 수 많은 습관들이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이 습관을 따라 생각없이 살다보면, 예수를 늘 말하면서도 막상 예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삶을 살게 될 수 있다. 습관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행동들, 그리고 말과 생각들… 이런 것들이 진정 겸손의 왕이신 예수로 충만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도 성화의 길을 걸어가야 하리라…

예수의 십자가를 날마다 바라보며 사랑하며 그것을 닮아가는 성화의음을 내딛는 그 삶이 어찌 고되기만 할까.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그 사랑의 힘이 우리가 인도하시는데 그것이 어찌 절망으로만 얼룩진 삶일 수 있으리라…우리의 넘어짐마저도 함께 하시며 날마다 동행하시고 지키시는데, 성화의 길이라는 것이 어찌 고독과 외로움의 연속이라 할 수 있으랴…

마치 에덴에 있었던 계명이 우리를 속박하고 우리를 시험하며 잘못을 하기만 하면 바로 심판을 내리시려고 하셨던 그런 두렵고도 괴로운 것이 아니었듯이, 오히려 우리를 사랑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그 사랑을 위해 자유를 허락하시고, 자유를 가지고 방종으로 흘러갈까 걱정하시며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우리를 정결하고 깨끗하게 올바르게 키우시려고 계명까지 세워주셨던 끝이 없는 사랑의 표현이었듯이….

그렇게 오해가 벗겨지고 사랑에 눈을 뜨고 나니 계명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지켜주는 소중한 것으로 계명이 다가오게 되었다. 더이상 나의 자유를 빼앗고 나를 정죄하며 나를 더욱 죄짓게 부추기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예수로 말미암아 그 사랑을 알고 나니, 계명이 나를 향한 주의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성화’도 그러하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까지는 좋은데, 선물과 같은 은총을 거저 받는다는 것은 너무도 행복한데, 어느 순간 성화의 과정이 짐스럽고 절망스러우며 외로운 길이 되었다. 나의 힘으로 악한 습관을 벗고 거룩해져 가려고 발버둥쳤지만 절망이 겹겹이 쌓이며 끝없이 참아야만 그런 과정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복음에 하나하나 눈떠가며 성화의 과정이 너무도 따뜻한 주님의 사랑이 가득한 과정이라는 것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내 안에 구석구석 깊숙이 자리잡아 그 정체를 온갖 다른 것으로 위장하고 숨어 있는 교만의 흔적들까지도 하나하나 벗기시고 온전케 하시는, 끝까지 책임지시는 그 사랑이 너무나 크다.

그 사랑을 믿지 못하는 불신을 날마다 내려놓고 장차 다가올 영광에 대한 소망을 품으며 내 모든 것을 주께 내어맡기고 주의 진리를 따라 나아가는 그 과정보다 위대한 인생이 있을까? 나 하나를 향하신 주의 사랑은 그토록 나를 소중하고 귀한 존재로 대해주시고 보배롭고 존귀하다 칭해주시고 헤아릴 수 없이 가치롭다 여겨주신다.

그 사랑이 내가 가는 모든 성화의 길의 원동력이고 내가 날마다 전진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며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밖에 없는 근거이다. 내가 잘되길, 내가 온전케 되길 나보다 더 더 바라시는 주가 계시고, 그렇게 나를 반드시 영화롭게 하시겠다는 주의 음성이 있는 한 나의 삶엔 어떤 절망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구나. 한없이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시각을 가지고 살아왔던 나에게 복음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놀라운 능력이다.

그러므로 이제 내 안의 죄에 대한 폭로가 두렵지 않다. 그리고 말씀에 비추어본 내 모습은 매우 심각하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에 서 있음이 드러날 때, 안심한다. 그렇지 못할 때, 두렵다. 물론, 내 안에 나보다 다른 이가 더 빛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이 있다. 그의 기쁨이 진심으로 나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그러나, 분명히 죄적인 모습도 있는 것이다.

두려움의 많은 부분이 교만에 기인한다. 교만으로 빚어지는 수많은 빗나간 감정들이 있다. 아버지의 기쁨에 진정으로 동참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슬픔에 진정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아들답지 못한 나의 모습들이 있다. 아들다운 아들이 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삶이다. 이것이 내 삶의 시작점이고 내 인생의 목적이다. 너무나 본능적으로 높아지려는 교만이 있다. 이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파괴하고 우리의 삶을 빗나가게 하는 그 지점이다.

유대인들 안에 이방인을 향한 멸시와 경멸… ‘너희는 지옥이고 나는 천국이다’라는 이 영적 교만의 모습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수록 오히려 더 짙어지는 모양새를 가진다. 장재형 목사의 로마서 2장 강해에서도 이것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까지도 자신을 높이는 데 필요한 재료로 전락시키고, 그 진정한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이방인들 앞에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근거로 삼아버리는 이 교만의 간교함이 진리앞에 부서져야만 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높아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과 끔찍한 교만을 따라가는 그런 삶이 될 수는 없다. 겸손의 왕, 예수만을 따라가기 원한다. 장재형 목사의 로마서 강해 2장은 신앙인의 죄를 깊이 찌른다. 앞으로도 더 읽어봐야겠다.

장재형 목사 로마서 강해

https://blog.naver.com/ibdda/223342020744

https://solafide.kr/

장재형 목사(장다윗 목사) 사순절 40일 묵상집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장재형 목사 사순절 묵상집
장재형 목사

이 글은 미국의 장재형 목사(장다윗 목사, 올리벳대학교 설립)의 2003년 부터 2008년까지의 사순절 기간 장목사가 사순절 묵상을 위해 설교한 내용을 그의 편집해서 낸 ‘십자가의 길’중 요한복음 19장을 다룬 ‘빌라도의 심문’이라는 챕터를 묵상하고 썼다.

https://blog.naver.com/forwhitelove/223393343612

​사순절은 부활절 전, 주일을 빼고 재의 수요일부터 40일의 기간을 의미한다. 사순절 묵상은 예수를 믿는 우리 신앙이 깊어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사순절 묵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길 그 토록 고대하던 이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왔지만 그들 안에 있는 증오와 살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라고 장재형목사는 이야기 한다. 빌라도 조차도 그분이 죄가 없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로마의 총독이었던 자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자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민이라 스스로 믿었던 자들, 뿐만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자들인 유대인들은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

요한복음 18장

18: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8:40 저희가 또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사순절이면 어느 교회에서건 사순절 묵상으로 이 부분을 읽을 것이다. 이 앞에 글에서 언급했지만 빌라도는 유대의 전통을 알고 있었다. 유월절이 되면 대제사장이 한명을 자유롭게 해줬는데 39절의 이 말은 ‘예수를 놓아 주길 원한느냐’ 였다. 하지만 요한복음 18장 40절 유대인의 외침이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를 죽이길 원한다” “우리는 예수가 죽기를 원한다” 와 같은 외침이다. 빌라도 조차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유대 선민들은 얼마나 더 잘알고 있었을까? 그런데 그들은 알고 있었지만 또 알지 못했다. 이게 너무나 중요하다. 신앙이 뜨겁고 신념이 강할 수록 더 크게 빗나갈 수 있고 더 크게 증오에 바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순절 묵상은 특히 신앙인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오늘은 기술이 발달해서 AI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하다. 심지어 가짜를 진짜 같이 만들어 내기도 하는게 그게 언듯 보기에는 그럴싸하다. 내 지인이 임영웅씨가 부르는 찬양이 있다면서 그 링크를 보내줘서 들어본적이 있다. 뭔가 어색하긴 하지만 임영웅씨가 안 부른 것도 아니라는 그런 애매 모호한 음성이었다. 그냥 들으면 ‘임영웅씨가 찬양도 부르는구나’ 할 정도인거다. 그런데 이게 AI가 만든 거라는 거였다. 이 때 나는 너무나 큰 충격에 빠졌다. 사순절 묵상과 무슨상관인가? 매우 정치적이었던 빌라도의 심문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들어가보자.

2024년 11월에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벌써 부터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선 후보들이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고 하더라. 지난 번에 대선에서 경쟁을 한 두 사람이기 때문에 올해 두 사람의 경쟁은 더 볼만 할거다. 세계의 초 패권국가인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가져 온다. 이걸 부인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 만큼 미국이라는 나라는 세계에 영향력이 큰 국가이다. 기술의 발달이 이번 대선에서 무슨 영향을 미치게 될까?

바로 AI를 가지고 허상의 이미지를 진짜 같이 만들어서 온라인에 배포를 하고 이를 선거 표심에 영향을 주게 되는 거다. 가령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최종 결정이 되었는데 거침없는 언사로 유명하지 않은가? 그를 지지하는 이들은 그를 지지하는 이유가 있을 거다. 그리고 민주당의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 또한 그를 지지하는 이유가 있을 거다.

대체로 자신의 지지 층이 있기 마련 일텐데 트럼트 전 대통령이 흑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AI로 만든 다음에 이것을 인터넷에 확산 시킨다는 거다. 흑인과 어울려 사진찍은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현재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여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우리 나라의 이재명대표 처럼 말이다. 그래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들은 이가 경찰에 쫓기고 잡히는 장면을 AI로 만들어서 확산 시킨다.

이 두 사진이 가짜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까? 이게 진짜라는 것을 사람들이 곰곰히 생각해볼까? 사실 확인을 하려고 할까? 그게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조작된 사진, 조작된 증거를 본다 하더라도 그게 조작되었다는 것에 관심이 있기 보다는 그 조작된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다. 나는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어서 정치 관련된 뉴스를 거의 보지를 않는다. 인터넷 신문에 들어가서 헤드라인 기사 정도만 간단히 읽는 정도이지 그것을 클릭해서 구체적으로 읽고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하는 행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정치는 게임과 같다. 내가 하는 게임이 아니라 상대방이 하는 게임에 중독되는 거다. 기독교에도 정치가 존재한다. 교단 정치, 노회 정치치, 교회 정치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교단 안에서도 정치를 해야 하고 노회 안에서도 정치를 하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라는 것은 불가근 불가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지만 또 그것에 너무 큰 관심을 가지면 허송 세월 하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상의 정치야 중요한 것이지만 기독교 안에서의 정치는 별로 중요한게 아니다. 왜냐? 우리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교단의 총회장이라고 해서 노회와 교회에 무슨 영향을 미칠 수 있단 말인가?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정말로.

세상의 정치가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활과 관련된 입법이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입법에 관련된 것을 찾아 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을 언제 다 하고 있나? 그러니 차라리 방관자가 되고 투표나 열심히 하는게 나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이라면 정치인 답게 행동하고 본을 보여야 하는데 우리 나라 정치는 매력젹이지가 않다. 유럽의 어느 나라 처럼 국회의원에게 주는 돈을 대폭 축소하고 권한까지도 분산 시키면 인기 없는 직업이될 텐데 이게 우리 나라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최근 대선 후보로 나왔었던 분을 만나서 차를 마셨다. 꿈은 가지고 있지만 현실이 되기 어려운…정치도 게임 처럼 중독이 된다.

위에 사진에서 보듯이 우리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잘 못된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것에 더 확고한 증거를 쌓으려고 하는 데 그 증거가 거짓이더라도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민족의 특성이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선동에 약한 부분이 있다. 선동에 약하니 정치가 선동적으로 가는 거다.

자 이제 요한복음 19장이다. 사순절에 정말 이 장면을 많이 읽어왔다. 이 장에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에 메달리심 그리고 운명하심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묵상하기 어려운 장이라고 생각한다. 장재형 목사도 사순절 묵상집에서 이 부분을 읽을 때 마음에 오는 슬픔과 고통이 큼을 여러 번 언급한다. 문이 있다면 열고 들어가기 싫은 문이다. 하지만, 이 문을 열고 들어가만 한다. 그래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귀한 것들이 있다. 그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장면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인류와 역사를 사랑한 하나님의 아들의 크신 사랑을 이 장을 통해서 볼 수 있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자.

요한복음 19장 1절로 3절

19: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19:2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19:3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채찍질을 당하고 군병들은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후 조롱했다.

이것을 보고 계시던 성부 하나님은 어떠셨을까? 우리는 이것을 몇 가지 다른 시각에서 볼 수도 있다. 하나는 성부 하나님의 시각, 그리고 이 장면을 바라 보는 유대인들의 시각, 이 자리에 요한이라는 제자가 있었기 때문에 요한이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예수님의 시각 마지막으로 나의 시각이다.

성부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자

마가복음12장

12:1 예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 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12: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12:3 저희가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2: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12: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저희가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혹은 때리고 혹은 죽인지라

12:6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마가복음 12장 6절에 나온 것이 바로 성부 하나님의 마음이다. 사순절에는 내 마음 내려놓고, 아버지의 마음을 더 생각해봐야한다. 아름다운 포도원이 있었는데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다는 거다. 그리고 때가 되어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을 받으려고 종을 보냈는데 종을 잡아 심히 때렸다는 거다. 다른 종을 보냈는데 또 농부들은 종을 능욕하고 또 종을 보냈는데 그를 죽이고 많은 종들도 때리고 죽였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 이 농부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이다.

주인이 농부를 죽이는게 상식적이다. 칭키스칸이라는 몽골의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제국에 자신의 사신을 보냈다고 한다. 400명 정도의 상인과 사을 보내면서 나는 칭기스칸인데 너희들 내 밑으로 들어와라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자 그들은 칭기스칸의 사신을 모조리 죽여버렸단다. 다시 칭기스칸이 같은 수의 사신을 또 보냈는데 이번에는 머리 카락을 다 잘라버린 후 돌려 보냈다고 하더라. 그 다음에 칭기스칸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와서 그 나라를 완전히 섬멸시켜서 이 지구상에서 아예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이게 호라즘 왕국이라는 곳이다.

보통 이러지 않은가? 강대국을 무시했을 때 전쟁이 일어나고 약자는 전멸하고 종이 되는게 역사에 일반적인 흐름이다. 계속 해서 애원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말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보낸 많은 종을 때리고 모욕하고 능욕하며 죽인 농부들에게 마지막으로 죽음의 신을 보내는게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보낸다. 사순절 묵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길을 바라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보라.

마가복음12장 6절

12:6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내 아들은 공경하겠지? 내 아들이라고 알아보고 그들이 잘 따르겠지? 하지만 꿈의 배반이 온다. 마치 유다가 사랑의 배반을 하듯 그 선민들도 유다를 닮아서 사랑의 배반을 한다.

마가복음 12장 7절

12:7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12: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 던졌느니라

상속자를 죽이자. 사순절 묵상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이다. 죽이자. 죽임. 상속자를 죽이고 우리가 그의 포도원을 빼앗아 버리자. 예수님을 이야기 하는 거다. 그런데 농부들 안에 어떤 마음이 있는가? 포도원이 무엇인가? 농부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대로 보면 유대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그들이 지킨 것이 무엇인가? 성전이라고 하자. 예배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자. 그런데 그들이 성전을 통해서 무엇을 하는가?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 자신의 배를 부르게 하고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로마와 결탁한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 그들이 하는게 무엇인가? 이 포도원을 빼앗아 버리자. 내것이 되게 하자. 이 포도원을 사유화하자. 이 포도원을 영원이 내것이 되게 하려면 상속자를 죽여버리자. 이 농부들은 상속자를 상속자로 알아 봤다. 추측이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인가? 몰랐다는 것인가? 알았다는 거다. 마가복음 12장을 보면 그들이 상속자를 상속자로 알았다는 거다. 아들을 아들로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상속자를 죽였다. 왜? 포도원을 빼앗아 버리기 위해서 아들을 죽인거다. 사순절 묵상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이 죄가 우리 안에도 있다는 것이다.

빌라도가 예수님이 죄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대제사장들도 마찬 가지였고 유대인들도 마찬 가지였다. 그들은 예수가 죄가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고 제자들의 고백을 통해서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율법을 찾아 보지 않았겠는가? 예언서를 찾아 보지 않았겠는가? 그들은 예수가 상속자임을 알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와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하시는 것들을 보고 그들은 그가 그리스도임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 성전을 빼앗기게 생겼으니 그를 죽이고 성전을 빼앗아 버리자라고 했던거다. 이게 사순절 우리가 묵상할 것이다.

이들이 누구인가? 군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할때 손으로 때릴 때 예수님을 보호해야 할 자들이 아닌가? 그들의 주인이 아닌가? 종들이 오히려 상속자의 죽음을 당연시 여기는 이 참혹한 역사의 한 장면을 봐라. 인간이 타락하면 여기까지 오게 된다. 누구까지 죽이게 되는가? 하나님의 아들까지도 죽이는게 인간이라는 거다. 요한은 이것을 기록하고 있다. 사랑의 사도는 사랑을 배반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악한 행위가 무엇인가를 써놨다. 그것은 자신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해서 이 땅에 그들을 죄의 고통에서 구원하기 위해 온 메시아를 그들의 손으로 죽이는 장면을 써놨다.

어제 뉴스에서 보니 2011년 후쿠시마 온천이 폭발을 했는데 원자로를 폐쇄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을 하면서 원자로 안으로 로봇을 들여 보내 그 내부를 촬영한 뉴스가 나왔다 그러면서 죽음의 원전이라고 했던가…가장 무서운 장면이라고 표현하더라. 그 뉴스를 보면서 내가 생각났던게 우리의 죄가 원전 보다 더하다는 거다. 저렇게 무서워서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고 로봇을 개발해서 사고가 난 장소로 들여보내고 그곳을 파악하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은 눈물 겹지만 원전보다 더 무서운게 우리의 죄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의 죄를 우리가 그렇게 무서워하는가? 죽음 보다 죄를 더 무서워하는가? 아니다. 너무나 죄에는 익숙하다. 죄에 무디어지고 원전 사고는 무서워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우리에게 있다. 사순절에는 이러한 모습을 더 깊이 알아가야한다.

일본산 생선에 후쿠시마 원전의 열을 식히는데 쓰인 그 물을 바다에 방수하고 있는데 그것에 생선이 방사능 오염이 되었을 테니 우리가 먹으면 방사능 오염된 생선을 먹어 큰 일 난다는 뉴스가 나온다. 옛 날에 광우병 사태가 생각나더라.

오염된 생선이네 아니네를 따지자는건 아니다. 인간자신의 생명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까지도 소중이 여기는 존재라는 거다. 나의 생명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생존권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 할 줄도 아는 존재가 인간 아닌가? 지구를 위해서 환경 운동하는 그린피스도 존재하고 동물의 생존을 위해서 북극곰을 지키기 위해서 운동하는 단체도 있지 않은가? 유럽 어느 나라에서는 살아 있는 생선을 바로 칼로 죽인 후 음식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왜냐고? 생선이 고통을 느낄 거니까 기절 시킨 후 고통없이 죽여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타인을 배려하고 심지어 생선까지도 배려하는 존재가 인간 아닌가? 그렇게 고상한 존재가 인간 아닌가? 그런데 왜 예수는 죽였는가? 죄로 인해 죽어가는 자기 자신은 왜 돌아보지 못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할건가? 사순절이니 더 정직하게 나를 돌아보자.

요한복음19장4절로 5절

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 하더라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고 가시관을 쓴 33세의 젊은 청년 예수, 빌라도는 이런 예수님을 군중 앞에 보이면서 죄가 없다고 한다. 로마의 총독이 예수는 죄가 없다고 한다. 이방인이 죄가 없다고 한다. 빌라도는 어떤 자인가? 아주 흉폭한 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는 예수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다고 다시 말 한다. 죄가 없는데 너희를 돌이키기 위해서 내가 채찍으로 그를 쳤다. 이 고통스러워하는 젊은 청년을 보라. 너희 마음에 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지 않느냐? 이 사람은 죄가 없다. 이게 빌라도의 외침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어떤가? 동정의 마음이 없다. 이 흠없는 어린양의 피를 보고도 그들은 동정심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뭐라고 하는가?

요한복음 19장 6절

19:6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 이 말은 너무나 우회적이다. 우리에게 쉽게 와닿는 직접적인 표현으로는 “예수를 죽여라”이 말이다. 이 말은 빌라도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자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 외침이 빌라도의 관정에서 크게 들린거다. 이런 잔인한 외침이..

“예수를 죽여라” “예수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라”

https://solafide.kr/

장재형 목사 사순절 묵상집

송축해 내 영혼(Bless The Lord, 10000 Reasons) – 맷 레드먼(Matt Redman)

안녕하세요~ 한글과 영어 찬양가사를 한 악보에! 오늘은 한글 영어 찬양 악보 송축해 내 영혼(Bless The Lord, 10000 Reasons) 포스팅합니다. 맷 레드먼(Matt Redman)의 유명한 찬양이죠.

10000_reasons 맷 레드먼 Matt redman

서정적이고, 멜로디어스하고, 동양적인 느낌? 민속적인 느낌? 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예배 때에 불렀던 곡인데, 원곡 같이 G키 찬양으로 하면… 성대가 많이 아프더라구요. 영어 악보 가사가 더 좋은,, 한국어 번역이 완전하긴 좀 힘들겠지요 ㅠㅠ 어쨋든 은혜로운 찬양입니다. 특히, 맷 레드먼이 신앙으로 상처를 극복한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에겐 하나님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 포스팅한 10000 reasons는 GPT도 맷 레드먼의 대표곡으로 뽑고 있네요 ㅎㅎ 맷 레드먼을 소개해달라고 물어보니 이렇게 답합니다

“맷 레드먼(Matthew Redman)은 영국의 기독교 음악 작곡가이자 뮤지션입니다. 그는 현대 기독교 음악계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다양한 교회 음악, 찬양, 그리고 예배 음악을 작곡하고 노래해왔습니다. 맷 레드먼의 작품은 그의 강렬한 가사와 음악적 재능으로 유명하며, 이는 수많은 교회와 기독교 음악 단체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곡으로는 “10,000 Reasons (Bless the Lord)” 등이 있습니다. 이 곡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과 위로를 주었으며, 기독교 음악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https://solafide.kr/

제가 아는 어느 찬양목사님이 5년정도 전에 예배만 드렸다하면.. 장재형목사 님이 설교를 전해주셨던 예배들이었는데요. 아침이면 아침마다 이곡을 꼭 부르셨던 .. 1년은 부르셨는데 언제 함께 찬양해도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음을 울리니 장재형목사 님 설교 메시지도 오히려 집중해서 잘 듣고 은혜를 받았었네요. 요즘 장재형목사 님 예배에서는 사순절 찬양을 많이 부르시지만.. 그분의 favorite? 인생찬양? 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던 ㅎㅎ

이 찬양은 한국어 가사와 영어 가사를 섞어 부르기도 좋은 것 같습니다. 송축해 내영혼~ 살짝 느낌이 안삽니다. 블레쓰 더 롤~~~d 하면 또 느낌이 살고요 ㅎ 참고로 한글 영어 찬양 가사를 섞어서 부를 때 장단점이 있습니다. 제가 인도할 때는 다양한 나라의 분들이 예배드렸는데 어학당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어요. 섞어불렀을 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물론 마지막에 ‘I worship Your Holy Name’ 반복할때는 6도 마이너코드로 해주는 센스!

찬양을 한글과 영어 가사를 섞어 부르는 것에는 몇 가지 장단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장점:

  1. 문화적 다양성: 한글과 영어를 섞어 부르면 문화적인 다양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다양한 듣는 이들에게 접근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2. 국제적 인식: 한국과 외국 사람들 모두를 대상으로 한 공연이나 음악에서는 한글과 영어를 섞어 부르는 것이 국제적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3. 예배 참여 증진: 외국인이나 외국어를 구사하는 교인들도 함께 찬양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단점:

  1. 언어 이해의 어려움: 한글과 영어를 섞어 부를 경우, 듣는 이들 중 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언어적인 표현이나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가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2. 발음과 억양의 차이: 한글과 영어는 발음과 억양이 다르기 때문에, 가사를 부를 때 자연스러운 전환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3. 음악적 통일성: 한글과 영어를 섞어 부를 경우, 음악적인 통일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가사의 언어적인 차이로 인해 음악의 흐름이 끊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글과 영어를 섞어 부를 때에는 듣는 이들의 언어적 이해도와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적절히 혼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악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언어를 활용하여 듣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학당에 다니시는 분들이 한국어 가사로 노래를 부를 때에는 다양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해요. GPT에 물어보니 이런 답을 주네요

  1. 자부심과 자신감: 언어를 배우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큰 도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를 부를 때 자신의 발음과 억양이 개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높일 수 있습니다.
  2. 문화적 이해와 연결: 한국어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해당 언어와 문화에 대한 연결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를 통해 언어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습니다.
  3. 즐거움과 흥분: 언어 학습의 일환으로 노래를 부를 때는 새로운 경험과 도전으로 인해 흥분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노래를 통해 언어를 연습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4. 커뮤니케이션 기술 향상: 노래를 부르는 것은 발음, 억양, 감정 전달 등을 연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언어 학습뿐만 아니라 실제 커뮤니케이션에도 도움이 되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5. 문화 교류와 친밀감: 언어를 통해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를 촉진시키며, 이를 통해 친밀감과 이해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총체적으로 보면, 한국어 노래를 어학당에서 부르는 것은 언어 학습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학습의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아 참, 맷 레드먼의 소개를 GPT는 ‘강렬한 가사’라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부드럽고 마음을 울리는 가사라고 생각합니다. GPT는 역시 한참 멀었네요 ㅋ

여하튼 장재형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자인 그분 맞습니다!)님도 한결같이 강조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완벽한 대속의 십자가 은혜를 말씀하십니다. 보혈의 은혜에 힘입어 살아가라고. 은혜를 놓치면 안된다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다른 이름은 없고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맷 레드먼의 찬양 중에는 정말 좋아하는 찬양인 Once Again (다시 한 번)이 그 대속의 은혜에 대해.. 맷 레드먼의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묵상을 느낄 수 있었어서 또 사순절에 많이 불렀던 것 같습니다.

맷 레드먼 Matt redman

원곡을 들어도, 악기들이 다 들어가는데도 사운드가 어딘가 절제되어있는 그 특유의 구성도 좋은 것 같습니다. 노래가 무겁지 않고 가볍습니다. 오히려 맷 레드먼의 노래 성향을 물어보니 답을 잘해줍니다

“그의 노래는 찬양과 예배를 중심으로 하며, 종종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감사를 다룹니다. 그의 음악은 심오한 가사와 흔하지 않은 음악적 재능을 결합하여 많은 듣는 이들에게 영감과 위로를 줍니다.

맷 레드먼의 노래는 보통 감정적이고 진실된 표현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종종 감사와 찬양의 기분을 전달하며,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대한 사색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와 악기 연주는 그의 음악에 깊은 정신적인 층위를 부여합니다.

또한, 맷 레드먼은 현대적이고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사용하여 기독교 음악을 선보입니다. 그의 곡은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현악기, 그리고 퍼커션 등 다양한 악기를 활용하여 다채로운 소리를 구현합니다. 그의 음악은 교회에서 사용되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예배 시간이나 신앙 생활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형태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사실 맷레드먼의 찬양중에는 정말 마음을 울리는 곡들이 많습니다. Heart of worship 마음의 예배 / Blessed Be Your Name 주 이름 찬양 / Father’s Song 아버지의 노래 곡들 모두 다 잘 아실 것 같습니다.

이런 가사가 나오는 이면에는, 아주 깊은 묵상과 체험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영감을 공연히.. 아 물론 공연히 주실 때도 있겠지만, 정말 가사들을 보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은 분이구나 합니다. 이것은 의무감에서 오는 신앙으로 절대 따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의무감에서 오는 신앙의 단점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의미 없는 형식적인 신앙실천: 의무감에서 비롯된 신앙은 종종 형식적이며 의미 없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를 들어 교회에 출석하거나 기도하는 것을 단순히 의무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이는 내면적인 영성적인 경험과 연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짜 신앙: 의무감에서 비롯된 신앙은 종종 가짜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사회적 압력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며, 이는 신앙이나 영성적인 성장과는 별개일 수 있습니다.

내면적 공감 부족: 의무감에 의해 신앙을 실천할 경우, 내면적인 공감과 연결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 형성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심리적 스트레스: 종교적인 의무감은 종종 심리적인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거운 의무감과 책임감에 시달리며, 이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위태로움: 의무감에서 비롯된 신앙은 어려움이나 시련이 발생할 때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의무감만으로는 신앙을 유지하기 어렵고, 진정한 내면적인 신앙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종교적인 신앙은 의무감에만 의존하는 것보다는 내면적으로 고려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개인의 내면에서 비롯되고, 영적인 성장과 경험을 통해 발전해야 합니다.

진솔한 고백을 담은 맷 레드먼의 찬양 같은, 마음을 울리는 많은 찬양들이 어디서나 불려졌으면 좋겠습니다.

한글 가사는 이렇습니다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경배해 해가 뜨는 새 아침 밝았네 이제 다시 주님 찬양 무슨 일이나 어떤일이 내게 놓여도 저녁이 올때 나는 노래해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경배해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주 그의 크신 사랑 넘치네 주의 선하심 내가 노래하리 수 많은 이유로 나 노래해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경배해 곧 그 날에 나의 힘 다하고 나의 삶에 여정 마칠 때 끝없는 찬양 드리리라 수 많은 세월 지나 영원히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경배해 송축해 내 영혼 내 영혼아 거룩하신 이름 이전에 없었던 노래로 나 주님을 경배해 나 주님을 경배해 나 주님을 경배해

한글 영어 악보도 있는 찬양 추천 부탁드려요^^

https://blog.naver.com/tidus_03/220934429637

한글 영어 찬양 악보 1. 새 힘 얻으리(Everlasting God)

한글 영어 찬양 악보를 한 번에! 첫 악보는 새 힘 얻으리(Everlasting God)입니다. 저희 교회 예배에서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오기에, 찬양 인도할 때에 영어 가사를 함께 적고, 섞어서 함께 부르니 더 은혜가 되네요

새 힘 얻으리, Everlasting God

새 힘 얻으리(Everlasting God)는 8비트 빠른 찬양의 대명사입니다. 원곡은 B키이지만, 한국에서는 A나 Bb으로 많이 불립니다. 인트로는 어쿠스틱 기타로 인도할 때는 sus4 코드를 이용해서 느낌을 살린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악기가 간소할 때는 키가 너무 낮아지면 늘어지는 느낌이 있어서 B나 Bb을 추천합니다!

이 곡은 하나님의 영원한 힘과 신실함에 대한 찬양으로,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했을 때 주님의 힘과 지혜를 빌어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곡은 많은 교회와 크리스천 그룹에서 경배와 찬양 시간에 자주 사용되는 곡 중 하나입니다.

관련된 성구는 이사야 40장 31절입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잠깐, 이사야 40장의 배경을 좀 더 깊이 살펴봅시다!

이사야 40장은 구약 성경의 한 장으로, 이사야의 예언 중 하나입니다. 이 장은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위로의 소식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주석을 통해 이 장을 이해해 보겠습니다:

  1. “너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희를 위로하라 너희를 위로하라 내 백성들에게 말하라” – 이 시작 부분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로하라고 이사야에게 명령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포로가 어떤 어려움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위로와 힘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2. “너희 죄를 속하게 하는 소리를 듣고 너희를 위해 보응하는 하나님” –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에게 보응하는 하나님이라고 설명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강조하며, 그의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실 것임을 약속합니다.
  3. “사막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들으라 너희는 길을 곧게 하여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광야에서 길을 만들라” –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을 예고하는 부분 중 하나로, 선지자 요한 바티스트의 역할을 언급합니다. 그는 사막에서 외쳐 이르되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전파할 것임을 예언합니다.
  4. “물이나 산들로 높이를 낮추고 골짜기를 평지로 만들고 험한 땅으로 평지가 되게 함은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게 함이라” – 이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방을 예고하는 부분 중 하나로, 예수 그리스도의 등장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모든 산과 골짜기를 평지로 만들 것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5. “여호와의 말씀이 항상 영원할 것이라” – 마지막으로, 이 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고 변함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은 늘 이루어질 것이며, 이는 그의 백성에게 희망과 안정을 줍니다.

이사야 40장은 이스라엘의 소망과 위로에 관한 예언을 담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임방과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에 대한 예고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배경 가운데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변치 않는 사랑을 찬양한 것이 Everlasting, 새힘 얻으리입니다.

새 힘 얻으리의 한글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새 힘 얻으리 주를 바랄 때
주를 바랄 때 우리 주를 바랄 때
새 힘 얻으리 주를 바랄 때
주를 바랄 때 우리 주를 바랄 때

주님 통치하시네
소망 구원 주시네

당신은 영원하신 주
내 영원하신 주
지치지 않으시는 주님

약한 자 방패되시며 위로자 되신 주
독수리 같은 힘 주시네

Everlasting God으로 영어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Strength will rise as we wait upon the Lord
We will wait upon the Lord, we will wait upon the Lord
Strength will rise as we wait upon the Lord
We will wait upon the Lord, we will wait upon the Lord

Our God, You reign forever
Our hope, our strong Deliverer

You are the everlasting God
The everlasting God
You do not faint
You won’t grow weary

개인적으로는 Lincoln Brewster의 버전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B키네요.

https://solafide.kr/

링컨 브루스터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드려봅니다.

린컨 브루스터(Lincoln Brewster)는 미국의 기독교 음악가이자 싱어송라이터입니다. 그는 주로 현대 크리스천 음악 장르에서 활동하며, 전문 기타 연주자로서도 유명합니다. 브루스터는 자신의 음악에서 신앙과 예배를 중심으로 다루며, 그의 곡들은 많은 크리스천 교회에서 찬양과 예배 시간에 자주 사용됩니다.

린컨 브루스터는 주요 앨범과 곡들로 크리스천 음악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앨범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Amazed” (2002): 이 앨범은 그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Everlasting God”와 “Love the Lord” 등의 인기 곡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2. “Today Is the Day” (2008): 이 앨범은 “Today Is the Day”, “Salvation Is Here” 등의 히트 곡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의 음악적 스타일과 신앙적 메시지를 잘 대변하는 작품입니다.
  3. “Real Life” (2010): 브루스터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Reaching for You”, “Real Life” 등의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4. “God of the Impossible” (2018): 최근 발매된 앨범 중 하나로, “While I Wait”, “Here I Am” 등의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린컨 브루스터는 그의 음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전하고 있으며, 그의 기타 연주 실력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크리스천 음악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원 글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blog.naver.com/tidus_03/220934427176

일본 여행 하코네. 우오가 스시, 아시노 호수, 이즈 리조트&스파 여행!

요즘 핫한 일본 여행와서 내가 장담 컨데 한국 서울에 있는 어느 특급 호텔 보다 맛있는 스시집! 일본여행에서 스시는 빠질 수 없다.

Uogashizushi, 沼津魚がし鮨 流れ鮨 伊豆の国大仁店

한국 사람 대부분은 일본어를 자판에 못 칠거니까 오우가시 스시 집으로 검색하면 된다.

구글 맵은 아래

https://www.google.com/maps/place/Uogashizushi/@35.0036738,138.9382362,17z/data=!3m1!4b1!4m6!3m5!1s0x60199340f0cf3d75:0xd66966f9c9a66883!8m2!3d35.0036694!4d138.9408111!16s%2Fg%2F12hk88yg7?entry=ttu

https://www.uogashizushi.co.jp/shop/e-shop/nagare-oohito/

위에는 홈페이지 주소

이것은 이 가게 주소이다.

여기는 일본 시즈오카현 이즈노쿠니시에 있는 오우가시 스시집이다. 내가 듣기로는 프렌차이 시스집이라고 하더라. 한국 사람들은 이곳으로 여행을 잘 가는지 모르지만 이 근처에 한국어 간판이 있는 식당도 있는데….음….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가보고 싶다면…

주차장은 넓었다. 단, 반드시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작년 여름 이즈시로 비지니스와 여행을 겸해서 다녀 왔다. 이곳에서 스시를 먹고 난 다음에 바로 며칠 후 워커힐 호텔 뷔페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왜냐고? 일본의 이 스시집이 너무 생각 나서 스시를 또 먹고 싶어서다.

워커힐 호텔에서 그때 뷔페가 얼마였는지 기억은 안나는 데 지금 워커힐 ‘더 뷔페’의 가격은 17만원 정도 한다. 1인 가격이다.

일본 오우가시 스시집에 가서 한 테이블에 6명씩 두 테이블이 정말 배가 터지게 먹고 또 먹고 입에서 비린내가 날 때까지 먹으라고 했다. 며칠 간 나 때문에 너무 고생했던 이들이어서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24만원 나왔더라.

모든게 다 맛있다. 기가 막히다. 성게알도 너무 맛있다 뭐 하나 안 맛있는게 하나도 없더라. 새우도 너무 맛있었다

워커힐 더 뷔페로 갔다. 워커힐이라면 특급 호텔 아닌가? 여러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나는 스시만 골라 먹고 싶었는데…더 뷔페 더 힘을 내야 한다. 이래 가지고는 안된다. 새우가 오우가시 스시집의 그 새우 보다는 2배는 더 맛이 없다. 그 스시집과 비교해서 신선하지도 않다.

워커힐 일식당에도 가봤다. 오우가시 스시 집 보다 못하다.

한국에 좋다는 특급 호텔 다 가봤다. 그 나마 나은 곳이 소공동 롯데호텔 뷔페인데 이것도 최근에 가봤더니…영…

오우가시 스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자주 가는 후쿠오카에도 있더라. 반드시 이 스시집을 가라. 다른 곳도 많겠지만 내가 다시 간다면 이 스시집을 간다.

이 생선은 살아 있더라…입을 벌리고…

이건 꼭 먹어야 한다. 반드시. 성게알이며…새우며…

국물이 있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하코네 마치라는 곳에 위치한 이시노 호수라는 곳을 갔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제주도에 백록담과 백두산 천지가 영험하다고는 한다. 나는 백록담도 안 가봤고 천지도 안가봤다.

그런데 아시노 호수는 가 봤다. 대충 찾아 보니 둘레가 거의 백두산 천지 보다는 두배에 가깝다.

아시노 호는 일본 가나가와현 아시가라시모군 하코네정에 있는 호수이다. 약 3000년 전에 하코네 산의 중앙화구구의 대규모의 수증기 폭발에 인해 이루어진 폐색호이다. 면적은 7.1 평방km, 깊이는 43.5m이며 수면 높이는 해발 723m이다 – 위키 백과

이게 산 정상에 위치한 호수더라. 그런데 저렇게 큰 여객선들이 호수를 왔다 갔다 하면서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와…정말 엄청나게 컸다. 이 산 정상에 있는 호수에 물고기가 있더라 ^^ 이 물고기는 원래 있었나? 사람이 풀었으려나?

일본의 저런 디테일한 맛집이 인상이 깊었다. 나는 먹지 않았지만 예쁘고 작고 비싸더라 ㅋㅋ

아시노 호수 건너편의 카페

이 호수를 건너 가는 데 신사? 이런게 많이 보였다. 주황색 비슷한 색인데…어딜 가나 저런게 보인다.

거대한 온천이 존재하는 일본, 자연의 힘에 두려움이 커서 저런 신을 믿게 된건가? 아니면 오래전 이 국가를 지배하던 이들의 계획인가? 그 것이 현재도 유지 된다. 여기도 신 저기도 신…존중은 하지만…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www.tfyjapan.com

번역을 하면, 시즈오카현 이즈 요시나 온천이다. Resort&Spa- Izu로 검색하면 된다. 일본에 여러개의 지점이 있다.

아 여길 가야한다. 너무 너무 근사하고 좋다.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저기다. 그리고 건너편 호텔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가격이기 때문에 잘 수는 없다. 그리고 이곳은 정원도 있고 계곡 옆에 앉아서 쉴 테라스도 있다. 정말 환상적인 곳이다.

작년 7월경 사진과 올해 3월 초 사진

하코네 온천은 일본의 유명한 온천 지역 중 하나로, 도쿄와 나가노 현의 경계에 있다. 이곳은 일본 최고의 온천 명소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탁 트인 산세가 유명하다.

하코네 온천은 일본의 역사적인 온천 지역 중 하나이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온천 지역에는 다양한 종류의 온천이 있으며,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다양한 온천을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하코네 온천 지역에는 호텔, 리조트, 료칸 등 다양한 숙소가 있어 편안한 숙박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온천을 테마로 한 다양한 레저 활동과 문화 프로그램도 제공되어 있다.

또한, 하코네 온천 지역 주변에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명소들이 많이 있어 관광객들이 풍성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온천을 배경으로 한 하이킹 코스나 간단한 산책로 등이 있다.

하코네 온천은 일본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경험하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 추천하는 여행지 중 하나다. 아름다운 자연과 편안한 온천으로 힐링하고 휴식을 취하며, 일본의 전통과 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너무 힐링이 되는 공간이다. 더군다나 한국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지만 여튼 한국 사람 찾아 보기 힘들다. 골프장에서도 한국 사람을 만나지를 못했다.

다음엔 이곳의 골프장에 대해서 써보기로!!! 아예 사버리자!!!!! ㅋㅋㅋ

https://solafide.kr/

렘브란트 작품과 사순절 묵상(장재형목사의 ‘십자가의 길’)

렘브란트 작품과 사순절 묵상(장재형목사의 ‘십자가의 길’)

장재형목사(장다윗목사)의 십자가의 길을 읽어보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I – 다 이루었다’라는 제목으로 장재형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요13-19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읽으며 먼저 소개하고 싶은 렘브란트의 작품은 ‘갈릴리 호수’, 그의 유일한 바다풍경 그림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림 속에는 14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는 작품입니다. 그의 화풍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이 인물들 중 일부는 아마도 렘브란트 자신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갈릴리는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지역으로, 이곳은 이스라엘에 있는 담수 호수이지만 전통적으로 바다로 불려왔습니다. 게네사렛, 디베랴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 갈릴리는 성지순례객들이 매우 감격해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이 갈릴리 호수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마가복음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다양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만 중복되는 부분도 많아 실제로는 많은 내용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3년간의 공생 기간 동안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며, 이는 매우 짧은 시간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폭풍은 예수님과 12명의 제자들이 주요한 주제입니다. 이 12명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분들로 이 중에는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도 포함됩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갈릴리호수 북쪽의 가버나움 동네에서 어부로 일하던 사람들입니다.

이 때 폭풍우가 일어나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신 것을 깨운 제자들은 위험을 알리며 살려 달라고 외쳤습니다. 이 상황은 렘브란트가 작품으로 그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바다에 대한 지식이 예수님보다 더 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폭풍이 일어나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워 구원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이 피곤하셨을 때 그 배에 누워 쉬고 계시던 것을 상상하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의 끝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장재형목사의 사순절 묵상집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를 향한 사랑임을 깨닫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감리교에서 동성애자를 축복하고 제명하고 출교시킨 사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우리가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가요? 나 자신도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 어려운 존재로서 죄인이 아닌가요? 현재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만족스러운 것일까요?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나의 이런 모습도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요? 어떻게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실까요?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일까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누가 저주받기 위해 태어나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르며 태어나지만, 그 사람이 다른 길을 택하거나 주님의 사랑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폭풍이 일어났지만 제자들은 놀라지 않고 예수님이 주무시는 모습을 그려낸 화가가 렘브란트입니다. 렘브란트의 몇몇 작품을 보고 장재형목사의 사순절 묵상집 ‘십자가의 길’도 함께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바다의 폭풍을 잠잠케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엇이 바다의 풍랑과 같을까요?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우리의 길과 진리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것을 은혜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장재형목사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임을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 삶이 우리를 위한 사랑이고, 섬김이었고, 그의 죽음과 부활까지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주님과 제자들은 이별을 맞이해야 합니다.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은, 최후의 만찬과 안네스의 뜰, 그리고 빌라도의 관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면, 제자들은 정말 많이 무지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 어떻게 말할까요? 아마도 신앙이 너무 어렸을 것입니다.

몸은 커서 성인이 되었고, 직업은 어부인 이들이 갈릴리 호수에 있었던 제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폭풍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재능이 있고 인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도 우리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에 힘입어 가능합니다. 장재형목사도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야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작은 것 하나까지도 그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교제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의심스럽습니다. 그가 나를 미워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의문입니다. 아마도 이런 생각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막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함께하는 동료가 나를 사랑하거나 미워한다는 것을 따지는 것은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아빠를 사랑해? 이런 말을 안 합니다. 자신이 해야 할 공부를 하고 자신이 할 일을 하며 친구들과 놀기가 이 아이의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중학생을 둔 부모들이 나를 누군가가 미워한다고 말할 때인가?

어쨌든, 세족식 때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동안 그들에게 보여주신 것들이 다 있는데도 그들은 서로 낮아지고 섬기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주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장재형목사의 묵상집을 읽어보며 예수님의 절절한 섬김을 배우게 됩니다.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니까 이제는 몸으로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다음에는 렘브란트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님’과 장재형 목사의 사순절 묵상집인 ‘십자가의 길’의 내용들을 함께 보려고 합니다.

https://blog.naver.com/forwhitelove/223381131889

https://solafide.kr/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설교학 수업: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삶으로 전파하기

장재형목사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 신학교(OTCS)의 김 야고보 박사는 설교나 설교 작성 기술인 설교학을 단순히 실용적인 기술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신앙의 표현에 관한 것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설교를 단순히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에게 신앙을 전달하고 영감을 주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이번 학기에 김 박사는 Olivet University Riverside 메인 캠퍼스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수강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교학 과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안수 목사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 준비와 발표의 기본 개념을 소개합니다. 김 박사는 학생들에게 설교 듣기 연습, 메모 작성, 설교 본문 초안 작성 등을 지도하고, 마지막으로는 학생들이 스스로 설교하는 연습을 하도록 돕습니다.

2학년 학생인 마크 히는 김 박사님의 수업을 통해 많은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김 박사님은 청중의 상황을 이해하고, 메시지를 삶에 적용하는 것이 설교의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는 매우 도전적인 요구이지만, 마크 히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김 박사님은 20년 이상에 걸쳐 선교사로 봉사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교회를 개척해왔습니다. 그는 다양한 기회에 많은 종류의 청중에게 설교한 경험이 있으며, 캠퍼스에서도 인기 있는 채플 설교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김 박사님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관점과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장재형목사 설립|올리벳대학 캠퍼스 개발 추진

장재형목사 설립|올리벳대학에 랄프 윈터 도서관 개원

장재형 목사 설립한 WOA에 기독일보 방미단 방문

장재형목사 설립 WETIA, 세계 복음주의 신학대 네트워크

장재형목사 설립한 WEC 한교연 미국연수단 내방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유럽 신학교들과 협력 논의

장재형목사 설립한 진젠도르프 2023 박사과정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OIT 교수진 CES 2022 컨퍼런스 참석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대표단, ABHE 연례 회의 참석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진젠도르프 박사과정에 전세계 학생들 참여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최신 랜더링 공개

장재형목사 설립 OTCS 기독교 변증학 과정 신앙의 이유 탐구

장재형목사 (장다윗, 올리벳대학교 설립자)의 ‘로마서 강해’를 읽고나서…로마서 1장1절

장재형목사 (장다윗, 올리벳대학교 설립자)의 ‘로마서 강해’를 읽으며…[로마서2장]

장재형목사 (장다윗, 올리벳대학교 설립자)의 ‘로마서 강해’를 읽으며….

장재형목사 (장다윗, 올리벳대학교 설립자)의 ‘로마서 강해’를 읽고나서…

솔라피데

매력적인 콘텐츠 제작에 중점을 두고 개정된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 OSMC 소셜 미디어 과정

장재형목사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OSMC(Olivet School of Media and Communication)는 봄 분기에 매력적인 콘텐츠 제작에 중점을 두고 개정된 소셜 미디어 과정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이전에 소셜 미디어 과정 커리큘럼은 뉴스 속보, 스토리 리드, 정보 수집 및 콘텐츠 큐레이팅을 위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언론인을 교육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정보 수집 및 전파를 위해 일반적으로 Facebook, Twitter, Instagram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러나 Tiktok 및 Clubhouse와 같은 다른 새로운 플랫폼이 미국과 그 외 지역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지난 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식 격차를 메우기 위해 커리큘럼을 재설계하고 있습니다.

재설계된 과정에서는 소셜 미디어의 전략적 콘텐츠 제작이 가장 중점을 둘 것입니다. 학생들은 경험을 창출하고 목소리를 정의하는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콘텐츠 제작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진정성과 전문성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청중의 매우 다양한 부분에 다른 “피치”를 제공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다음은 새로운 소셜 미디어 과정에서 다룰 심층적인 질문의 몇 가지 예입니다.

OSMC 커리큘럼 검토 패널은 매년 모든 과정을 검토하여 미디어 업계의 최신 개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과정 콘텐츠를 조정하거나 재설계합니다.

장재형목사 설립|올리벳대학 캠퍼스 개발 추진

장재형목사 설립|올리벳대학에 랄프 윈터 도서관 개원

장재형 목사 설립한 WOA에 기독일보 방미단 방문

장재형목사 설립 WETIA, 세계 복음주의 신학대 네트워크

장재형목사 설립한 WEC 한교연 미국연수단 내방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유럽 신학교들과 협력 논의

장재형목사 설립한 진젠도르프 2023 박사과정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OIT 교수진 CES 2022 컨퍼런스 참석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대표단, ABHE 연례 회의 참석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진젠도르프 박사과정에 전세계 학생들 참여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최신 랜더링 공개

장재형목사 설립 OTCS 기독교 변증학 과정 신앙의 이유 탐구

솔라피데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ESL 학생들은 내레이션 학습 방법으로 영어 실력을 향상시킵니다.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 리버사이드의 Olivet School of Language and Education(OSLE)에서는 최근 ESL(영어를 제2언어로 가르치는 프로그램) 교육에 새로운 학습 방법인 내레이션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이 방법은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내레이션 방법은 다단계 학습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학생들은 텍스트를 보지 않고 기사나 책의 오디오 녹음을 듣습니다. 그런 다음, 학생들은 텍스트와 함께 두 번째 듣기를 통해 익숙하지 않은 어휘를 식별하게 됩니다. 또한, 배운 각각의 새로운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고 해당 단어를 사용하여 문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 학생들은 오디오를 들으면서 텍스트를 전사하여 봅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읽은 기사나 책의 내용을 요약하기 위해 구두 내레이션을 녹음해야 합니다.

이번 분기부터 ESL 학생들은 이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여 수업 시간과 개별 학습에서 영어를 연습해 왔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학생들의 영어 이해력, 작문 및 말하기 능력이 크게 향상되도록 도왔습니다.

“번거로운 문법적 지시는 학습자를 만족시키거나 용기를 고무시킬 수 있지만, ‘내레이션’ 방법은 학습자의 타고난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사랑을 자극합니다.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이 수업시간에 구술을 정확하게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라고 ESL 강사가 설명했습니다.

장재형목사 설립|올리벳대학 캠퍼스 개발 추진

장재형목사 설립|올리벳대학에 랄프 윈터 도서관 개원

장재형 목사 설립한 WOA에 기독일보 방미단 방문

장재형목사 설립 WETIA, 세계 복음주의 신학대 네트워크

장재형목사 설립한 WEC 한교연 미국연수단 내방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유럽 신학교들과 협력 논의

장재형목사 설립한 진젠도르프 2023 박사과정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OIT 교수진 CES 2022 컨퍼런스 참석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대표단, ABHE 연례 회의 참석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진젠도르프 박사과정에 전세계 학생들 참여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최신 랜더링 공개

장재형목사 설립 OTCS 기독교 변증학 과정 신앙의 이유 탐구

솔라피데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 ZSDS, 트랙 리더들과 협력하여 DMin 후보자의 성공적인 이수 추구

장재형목사
올리벳대학교


장재형목사가 세운 올리벳대학교의 진젠도르프 박사과정(ZSDS)은 2월 25일 목회학박사(D.Min.) 프로그램의 사역 트랙 리더들과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 회의의 목적은 각 트랙의 리더에게 2022년 4월에 열릴 예정인 구전 변론 일정을 알리는 것입니다. ZSDS는 트랙 리더가 박사 학위 과정을 지원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형식 가이드 및 신학 연구 작성을 포함한 리소스를 소개했습니다. 그들은 이를 멘토와 후보자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ZSDS는 트랙 리더들에게 D.Min의 마지막 단계에서 각 후보자를 격려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마치기 위해 최종 논문을 기한 내에 완성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후보자는 논문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위해 구두 변론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구술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들은 6월 올리벳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할 것입니다. ZSDS는 계속해서 트랙 리더 및 멘토와 긴밀히 협력하여 각 후보자가 졸업을 위한 업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장재형목사 설립|올리벳대학 캠퍼스 개발 추진

장재형목사 설립|올리벳대학에 랄프 윈터 도서관 개원

장재형 목사 설립한 WOA에 기독일보 방미단 방문

장재형목사 설립 WETIA, 세계 복음주의 신학대 네트워크

장재형목사 설립한 WEC 한교연 미국연수단 내방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유럽 신학교들과 협력 논의

장재형목사 설립한 진젠도르프 2023 박사과정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OIT 교수진 CES 2022 컨퍼런스 참석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대표단, ABHE 연례 회의 참석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진젠도르프 박사과정에 전세계 학생들 참여

장재형목사 설립 올리벳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최신 랜더링 공개

장재형목사 설립 OTCS 기독교 변증학 과정 신앙의 이유 탐구

솔라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