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대한 장재형 목사의 통찰
장재형 목사는 사도행전 27장을 강해하면서, 인간의 삶이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펼쳐지는 귀한 여정임을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예정’이란 단순히 인간의 미래가 기계적으로 미리 정해져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 개개인을 향한 선하고 자애로운 뜻을 가지고 계시며, 그 뜻을 따라 사람을 부르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과정을 “하나님이 인간을 선택하시고, 그 선택을 통해 사람을 구별하셔서 목적이 있는 길로 이끄신다”라고 말한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우연히 마련된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 창조 전부터 계획하신 깊은 섭리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가 늘 강조하는 바는, 이러한 예정 사상이 결코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거나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그분과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 부름받았으며, 각 사람이 가진 독특한 재능과 특성을 통해 하나님이 정하신 뜻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재형 목사는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인간적인 두려움이나 무지로 인해 외면하면 결국에는 더 큰 환난에 부딪힐 수밖에 없음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바울을 선택하셨고, 바울이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고 작정하셨다. 그 과정에서 바울이 항해 중 광풍을 만나고 파선을 경험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고 성취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예정에는 인간의 실수나 연약함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보존과 인도가 포함되어 있다.
장재형 목사가 말하는 예정과 선택의 핵심은 ‘목적’과 ‘사랑’이다. 인간을 맹목적으로 끌고 가거나, 억지로 어떤 길에 몰아넣는 신적 전능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각각의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7장에 등장하는 276명이라는 구체적 숫자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맡기신 구원의 서사를 놀랍게 보존하신다. 바울은 그 배 안에서 단지 ‘죄수’ 신분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는 데 핵심 열쇠가 되는 존재였다. 배에는 백부장 율리오가 있고, 다양한 군인과 선원, 그리고 다른 죄수들이 함께 있었다. 그 거대한 인간 군상의 한복판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결국 모든 사람을 살리는 주역이 된다.
장재형 목사는 이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은 한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향한 구원의 의도를 포함한다”라고 설명한다. 바울이 탑승했던 배가 광풍을 만나 난파 위기를 겪을 때, 바울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바울 혼자만 살게 해 주는 약속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와 함께 하는 이들을 모두 살려 주겠다”라는 공동체적 구원의 약속이었다. 이 말씀이 가리키는 의미는, 오늘날 교회와 선교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부르신 특정인이 있을 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구원의 은혜로 초청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는 한 사람의 믿음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더욱 넓은 구원의 장이 열릴 수 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빌립보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통해 구원을 얻고, 그의 온 집안이 함께 주님을 믿게 된 장면 역시 이러한 원리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장재형 목사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한 통치를 신앙인들에게 재차 각인시킨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광풍을 만난 배처럼 흔들리고, 각종 위험과 고난 속에 던져진다 해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 안에서 길을 찾고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문이 닫히고, 길이 끊어지는 듯 보일 때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다르게 활짝 열리는 또 다른 길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러니 절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절망이란 믿음의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단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선하고, 그분은 절망 가운데서도 삶을 반전시키는 소망을 허락하시는 분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결국 장재형 목사의 ‘예정과 선택’ 신학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실 선한 계획이 틀림없이 있다’라는 신뢰에서 출발한다. 이는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크게 힘이 되는 믿음이다. 우리가 어떤 자리나 상황에 놓여 있든, 거기에 분명 하나님의 목적과 계시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에 만난 수많은 역경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듯이,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는 난관 역시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바라볼 때, 결국엔 구원의 사건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인식이 개인의 경건과 공동체적 삶, 그리고 선교 현장에서 모두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고 가르친다. 교회나 학교, 다양한 선교지가 나아가는 길도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방향으로 가거나,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기회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들이 한데 모여 기도하고 기록하며 역사하는 공동체가 되어 간다면, 어떤 문이 닫혀도 다른 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도 하나님이 열어 놓으신 때와 장소에 이르면 오히려 크게 번영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는 경우를 셀 수 없이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정과 선택에 대한 장재형 목사의 강조점은 인생의 길을 오직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된다는 점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인생의 항해와 광풍 속에서의 믿음: 사도행전 27장의 적용
장재형 목사가 사도행전 27장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또 다른 핵심 메시지는, 광풍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믿음의 자세이다. 바울이 로마로 향하는 배를 타는 장면은 그냥 지나쳐 보기엔 너무도 파란만장하다.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백부장 율리오에게 맡겨져 있고, 배에는 로마에 압송되는 여러 죄수와 군인, 선원, 선장 그리고 상인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이 탄 배는 곡물을 실어 나르는 상선이었으며, 바람의 흐름과 날씨에 따라 노선이 바뀌고 속도가 좌우되는 범선이었다. 당시 지중해의 항해는 계절풍과 해류에 크게 의존했기에, 사도행전 27장에 담긴 기록은 굉장히 구체적이다. 이는 “의사 누가”가 실제로 체험한 항해의 세부 사항을 충실하게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재형 목사는 이 기록의 디테일을 높이 평가하면서, “누가처럼 신실한 기록자가 되라”라고 역설한다. 목회나 선교 사역을 할 때, 사소해 보이는 정보와 경험도 하나님 안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으며, 그것이 후대에게 믿음의 유산이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276명이라는 배 탑승 인원, 어디에서 어느 항구로 이동했는지, 몇 날 며칠 바람이 거슬렀고, 어떤 종류의 바람이 불었는지 등의 세부 사항은 믿음의 역사와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가시적으로 보여 준다. 장재형 목사는 “인간이 작성하는 기록”이 곧 하나님이 역사하신 흔적이자, 훗날 다른 이들을 살리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선교지에서의 여정, 교회 개척의 과정, 일상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은혜를 충실히 남길 때, 그것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영적 도전을 받고,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그가 사도행전 27장을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이 항해가 우리 인생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배가 순풍을 만나 순조롭게 가는 시기도 있지만, 강풍과 거친 파도를 만나 멀미를 하고, 배가 난파 직전까지 가기도 하는 등,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거치게 된다. 바울은 경험 많은 선장이나 선원보다도, 이 항해가 위험하며 큰 손실과 생명의 위협을 가져올 수 있음을 미리 예견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단순히 초자연적인 예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알고 그 환경을 숙지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현명한 눈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선교 현장에선 그 문화와 지형, 사람들의 언어와 풍습을 제대로 알아야 하며, 실제적인 필요를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장재형 목사는 “진정한 선교는 바울처럼 그 땅과 그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바울은 선장의 지식이 부족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통찰과 실제적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위험을 미리 알렸던 것”이라고 풀이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때로 선장과 선주, 그리고 배를 움직이는 ‘전문가들의 말’만을 신뢰하고, 믿음의 사람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 결국 바울이 말한 대로 배는 광풍에 휩쓸리고, 열나흘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극도의 공포와 혼란에 휩싸인다. 이 상황에서 바울의 역할은 극적으로 부각된다. 그가 “이제는 안심하라”고 담대히 선포하며,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네게 주셨다’고 했다”라고 말함으로써, 276명 전원이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알려 준다. 장재형 목사는 이 장면을 통해 “한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리는지”를 보여 준다고 해석한다. 바울의 말 한마디가 갑작스러운 광풍에서 흔들리던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았고, 그들을 다시금 살아 볼 용기와 희망으로 이끌었다. 실제로 바울은 이들에게 음식을 권하며,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그 믿음이 결국 모두에게 영향을 미쳐, 난파를 당했음에도 단 한 사람의 생명도 잃지 않는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우리 역시 인생의 배가 흔들리고, 인생의 광풍이 몰아칠 때, 믿음의 음성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그 믿음은 결코 공허한 낙관이나 근거 없는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확신이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네가 반드시 로마에서 증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그는 “분명히 배는 파손될지 몰라도 생명만은 잃지 않는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한편, 이로써 사도행전 27장에 묘사된 엄청난 항해의 위기가 결국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 난파 후 몰타(멜리데) 섬에 상륙해, 바울은 또 다른 이적과 복음 증거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장재형 목사는 “우리가 만나는 인생의 위기는 두려움이나 좌절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사역과 은혜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인생의 항해를 계속하다 보면, 갑작스런 광풍이 불어와 현재까지의 계획이나 물질적 기반을 산산조각 내 버릴 때가 있다. 장재형 목사는 “그때야말로 믿음이 빛을 발해야 할 순간”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큰 시련을 만나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니,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역의 길을 새롭게 열어 주신다는 확신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확신이 없다면, 파도에 휩쓸려 망연자실할 뿐이지만, 그 확신이 있다면 한마디 말이나 기도의 힘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커다란 소망을 심어 줄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광풍 체험을 ‘배멀미 같은 인생의 통과의례’로 비유하기도 한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괴로워진 상황에서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분명히 ‘육지의 해안’이 보이게 되고, 언젠가 항구에 도달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배멀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항구 불빛이 보이는 순간 엄청난 안도감과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그것이 믿음의 항해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한다. 비록 우리가 모진 고통을 겪을지라도, 하나님이 거두실 그 육지의 시간은 결코 늦지 않게 임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계속해서 기도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중심을 지키는 것이다. 바울이 난파 직전까지 몰린 선원들과 죄수들을 향해 “기운 내라, 이제 식사를 하자,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 주신다”고 선포했던 것처럼, 현대 교회도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살아 낼 힘을 주어야 한다고 장재형 목사는 역설한다. 실제 사역에서 그는 어려운 사정을 지닌 이들, 가난과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 심리적인 두려움에 갇힌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도행전 27장의 바울 같은 역할을 감당하라고 종종 이야기한다.
결국 이런 광풍 속 믿음은 교회와 선교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사역자와 성도가 함께 마음을 합해 기도하고, 하나님이 “우리가 반드시 목적지에 이르리라”고 약속하심을 믿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큰 바람과 파도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 간증과 사역 보고를 통해 전한다. 실제로 교회의 확장이나 선교센터의 건립, 학교의 설립 등은 종종 예산 부족, 행정적 장애, 문화적 충돌 등의 광풍을 만난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이 열어 두신 길이라면, 결국에는 길이 열리고, 새로운 부흥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로마로 가기 전에 만난 바다의 광풍”은 어쩌면 선교사들이 해외에서 겪는 숱한 어려움, 가정이나 교회에서 처한 재정적·조직적·영적 난관 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위기를 마주했을 때, 믿음의 사람들이 내는 음성이 얼마나 소중하고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 장재형 목사는 사도행전 27장의 이야기를 통해 힘주어 전하고 있다.
기록과 증언: 성령의 역사 전승을 위한 장재형 목사의 제언
장재형 목사는 설교 중에 여러 차례 “기록하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사도행전 27장에서 누가가 보여 준 사실적이고도 구체적인 기록 태도는, 결국 2천 년 동안 읽혀 오며 교회와 성도들에게 엄청난 은혜와 깨달음을 주었다. 만약 누가가 이 항해의 디테일을 적지 않았다면, 바울이 로마로 가는 과정에서 어떤 역경과 어떤 방식의 구원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 생사를 넘나드는 엄혹한 상황에서 누가가 흔들리는 배 안에서 펜을 들고 세세한 내용을 적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기록 활동을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는 방법”이라고 부른다.
그는 교회 사역자들이나 선교사들,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오늘의 사건을 기록하라. 여러분이 어디를 방문했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은혜를 받았고, 또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써 내려가라. 그것은 훗날 여러분만의 유산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영적 자산이 될 것이다”라고 권면한다. 교회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가장 소중한 보물은 건물이나 재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장재형 목사는 다이어리나 전도 일지, 선교 보고서, 사진과 영상 기록 등 다양한 매체를 적극 활용해야 함을 제안한다. 갈수록 디지털 도구가 발달하는 시대에, 기록 자체가 훨씬 쉬워진 것은 물론, 대중과 공유하기도 편리해졌다. 그러나 너무 많은 정보와 분산된 자료 속에서 정작 중요한 신앙의 여정은 흐릿해지지 않는가 하는 우려도 있다. 그렇기에 의도적이고 체계적인 기록 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사실 성경도 기록의 산물이다. 구전이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쉽게 변형되고 잊혀질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정성껏 적힌 기록은 세월이 지나도 본래의 내용을 보존할 수 있게 해 준다. 누가가 바울과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 등과 함께 실제 항해를 하며 27장에서 소개하는 스펙터클한 광경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임한 하나님의 음성은,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믿음의 독자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와 선교지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기록할 때,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세대가 우리의 기록을 읽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장재형 목사는 여러 사역 현장을 돌아보며, 종종 그곳에 “기록의 전통”이 이어지지 못해 선배들이 누렸던 부흥과 은혜가 아쉽게도 후대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를 안타까워한다. 잘 기록된 아카이브나 문서가 있다면, 새로운 목회자나 사역자가 와서 읽어 보고 “아, 이곳에서 하나님이 이런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구나” 하고 깨닫게 될 것이고, 그 깨달음은 다시금 믿음을 불러일으켜 공동체를 부흥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기록이 없으면 선배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나 은혜, 역사적 결단들을 되풀이하기 어렵고, 결국 은혜의 유산이 단절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사도행전 27장의 누가가 되어야 한다”라고 비유한다. 누가는 가혹한 상황에서도 기록할 이유를 잃지 않았고, 그 결과 엄청난 간증을 후대 교회에 남길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그는 기록이 단지 성공 이야기나 큰 기적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때로 사역 현장에서 겪는 시행착오, 어려움, 인간적 갈등, 경제적 실패 등도 솔직히 담아내야 훗날 다른 이들에게 진짜 도움이 된다. 바울이 항해에서 겪은 일들은 아름다운 승리만은 아니었다. 수십 명이 일제히 배 멀미를 하고, 하물과 배의 기구들을 바다에 던져 버릴 정도로 극한 상황을 경험했다. 하지만 누가는 그것까지도 세세히 적어 주었고, 그 기록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위기 상황과 비교하며, 바울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절망 속에서도 역사하신다는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가리켜 “영광과 수치,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까지도 전부 기록하고 나누는 것이 성령의 역사 전승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현대 교회나 선교사역에서도, 한 사역지가 문을 닫고 임시로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일어난 모든 일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졌고, 어떤 점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었는지를 꼼꼼히 기록해 둔다면, 후에 하나님이 다른 문을 열어 주실 때 훨씬 더 효율적이고 건강한 방향으로 사역을 재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 번 닫힌 문이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활짝 열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기록을 읽은 이들이 “아, 하나님께서 이토록 신실하게 그분의 구원 역사를 이끄시는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할 수도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런 기록의 가치를 개인의 일상에도 적용시키길 권한다. 누구나 하루를 정리하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묵상하고, 오늘 만난 사람, 오늘 본 풍경,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 느낀 감사와 찬양 등을 적어 놓으면, 그것이 곧 자기 자신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우리의 영혼에 찾아오시는 성령의 감동은 때로 짧은 한 줄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있고, 때로는 길게 써 내려가야 하는 깊은 고백이 될 수도 있다. 그 어떤 형태이든, 기록으로 남길 때 그 감동이 사라지지 않고 오래 간다. 그리고 훗날 다시 읽었을 때, 그때 그 고통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일하셨는지, 내가 얼마나 연약했는지, 또 어떻게 회복되고 성장했는지를 되돌아보며 새로운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다.
나아가 장재형 목사는 기록과 증언이 가지는 ‘선교적 파급력’을 강조한다. 우리가 단지 종이에 펜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영상이나 SNS, 사진 전시 등 다양한 형태로 널리 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 27장의 이야기가 2천 년 뒤에도 전 세계 교회에서 읽혀지고 설교되고 묵상되듯, 오늘 우리의 기록 또한 미래에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바울이 광풍 속에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을 살려 주시겠다고 했다”라고 외쳤듯,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할 통로가 바로 우리 각자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세계 여러 지역의 사역 현장을 예로 든다. 어떤 지역은 정세가 불안하여 사역자들이 금방 추방당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한 달 뒤 운영조차 불투명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 한 달간의 짧은 사역 내역이 꼼꼼히 기록으로 남는다면, 후에 같은 지역에 사역자가 다시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 기록을 토대로 훨씬 효과적이고 안전한 복음 전파 전략을 세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기록을 읽는 사람은, 앞서 사역했던 이들이 남긴 눈물과 기도, 고난과 하나님의 은혜를 생생하게 느끼게 되어, 사역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을 이어받게 된다.
결국 장재형 목사가 말하는 ‘기록과 증언의 필요성’은 단순한 정보 축적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전승하는” 핵심 수단이라는 점에 있다. 성경도, 교회사의 위대한 부흥 운동도, 선교사의 일기나 보고서도, 모두 그 시대에 살았던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으며, 어떤 기적과 은혜를 체험했는지 적어 둔 기록들이다. 우리가 그것을 읽고 배우며, 동일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궁극적으로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가 바울처럼, 또 누가처럼 살기를” 요청한다. 인생의 항해가 결코 평탄치 않고, 때로는 배가 난파당할 것 같은 바람과 파도 속에 던져질지라도,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을 굳게 믿으며, 그분의 말씀에 근거한 담대한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훗날 우리 공동체와 다음 세대가 그 기록을 읽고 다시금 힘을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광풍이 몰아쳐서 모든 사람이 좌절하고 있을 때, 바울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276명의 생명을 지켜 냈듯이, 이 시대에도 믿음의 한 사람이 내는 음성이 수많은 사람을 절망에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그러한 면에서,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은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환기시켜 준다. 결코 나의 삶이 사소하거나 남의 삶보다 하찮지 않으며, 오히려 “한 사람의 기록과 증언”이 공동체 전체, 나아가 전 세계와 후대의 교회를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항해와 광풍 속에서의 믿음”은, 그 자체로 모든 인간이 겪는 보편적 체험이기에, 바울의 이야기가 언제나 오늘날 독자들에게 심오한 깨달음을 주는 근거가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실시간으로 겪는 어려움과 사투의 기록도, 훗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서사가 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장재형 목사는 사도행전 27장을 근거로 세 가지를 특별히 강조한다. 첫째,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속에 있으며, 이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목적이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둘째, 인생의 항해가 광풍에 부딪힐 때야말로 믿음의 힘이 절실히 요구되며, 바울처럼 담대히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주변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기록과 증언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전승될 수 있으므로, 누가의 모범을 따라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부지런히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 세 가지가 장재형 목사가 사도행전 27장의 이야기를 통해 교회와 성도들에게 거듭 전하는 핵심 가르침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너무나 유효한 메시지다. 우리 각자가 바울이 되고, 우리 각자가 누가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끊임없이 증언”하는 것, 그것이 믿음 공동체의 본질적인 사명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장재형 목사는 과거 사도행전의 사건과 현대 교회의 문제들을 연결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특정 시대나 특정 현장에 국한되지 않음을 역설한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의 마지막 고비였던 광풍은 결코 한 사람의 실패담이나 고생담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사람을 살리는 신비로운 구원의 자리가 되었고, 이후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그 과정의 구체적인 디테일을 기록한 누가의 수고 덕분에, 우리는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현장을 생생하게 읽으며, 동일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오늘날도 세계 곳곳에서 장재형 목사가 거듭 말하는 것처럼, 닫힌 문이 다시 열리고, 절망이 소망으로 뒤바뀌며, 광풍이 복음 전파의 길이 되는 기적을 체험하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의 근원이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하고 선택하셨다’는 믿음과, ‘인생의 어떤 광풍 앞에서도 변치 않는 믿음의 자세’ 그리고 ‘그 과정을 세세히 기록하여 후대와 나누는 전승의 사명’이라 할 수 있다. 장재형 목사는 이 세 가지를 통해 참된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고, 선교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확장되며, 성도 개개인의 신앙이 깊어질 수 있음을 가르친다. 어느 시대든, 어느 공동체든, 사도행전 27장이라는 본문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임하고 있다. 바울의 담대한 선포처럼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우리 모두의 심장에 새겨질 때, 믿음의 공동체는 흔들리지 않고 주어진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그리고 그의 신실한 인도하심을 맛본 이들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으며, 결국 모두가 구원을 얻는 감격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서, 세상 끝날까지 이어지는 성령의 위대한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장재형 목사가 꿈꾸고 설파해 온, 살아 있는 사도행전적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이다.